풀물 들다, 염색장 정관채
The Color Sink into The Blue Sky
저 가녀린 초록 이파리 속 어디에 이리도 푸르디 푸른 하늘빛이 숨어 있었던 걸까. 모른 채 지나치면 그저 잡초로만 여길 풀 ‘쪽’.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쪽을 우려내 온 세상을 품어주는 하늘빛을 뽑아내는 인간문화재 정관채 염색장을 만났다. 우리 고유의 빛깔을 찾아내 보여주는 색채의 마법사에게 듣는 쪽 풀과 쪽 염색 이야기.
짱짱한 햇볕이 장하게도 내리쬐는 남도의 초여름. 김을 매듯 쪽밭에서 적당히 자란 쪽을 골라 뽑고 있던 장인의 모습이 주변 풍광과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그림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때 얼핏 눈길을 사로잡는 푸르딩딩한 그의 오른손. 뽑아낸 초록색 쪽을 한 줌 쥐고 있는 또 다른 손 역시 퍼런 물이 물씬하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손톱뿌리까지 하늘빛으로 물든 그의 손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고운 푸른빛을 발하고 있다. 바로 쪽물이 든 것이다. 스스로를 가리켜 ‘쪽쟁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더니, 손톱이며 손이며 온통 푸른 물이 배어들어 번지는데도 쪽 염색에서 손을 놓을 수도, 눈을 돌리 수도 없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에겐 ‘쪽쟁이’ 외에도 그를 지칭하는 몇 가지 또 다른 말이 있다. ‘공예 분야 최연소 인간문화재’, ‘국내 유일의 쪽 염색 장인’…. 지난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을 당시 그의 나이 42세. 이후 그에겐 공예 분야 최연소 인간문화재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아무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기에 더욱 특별할 거라는 생각에 그의 느낌을 슬쩍 물었다.
“
말하는 도중 그는 낫에 베인 흉터투성이 손과 쪽물 든 푸른 손톱을 웃음 띤 얼굴로 내려다봤다. 현재 미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우리 고유의 쪽 염색을 지키고 널리 전하는 작업에 소명이라든지, 책임감이라는 말은 왠지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뭔가 거창해지는 듯한 느낌을 경계하듯 조심스러워했다. 다만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이 됐다고만 했다.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가 이 길로 들어선 지도 올해로 벌써 34년째. 지난 1978년 당시 목포대학교 미대를 다니던 미술학도 정관채는 은사 박복규 교수로부터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물건 하나를 건네받았다. 바로 ‘참 쪽 씨앗’이다. “이 쪽을 네가 한번 살려보라.”는 은사의 말씀 한마디에 고이 품고 돌아온 쪽씨는 사실, 박복규 교수의 스승인 민속학자 예용해 선생이 어렵사리 구해온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내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왜 하필 그였을까. 이 쪽씨를 진심으로 대하며 잘 살려낼 사람을 찾던 스승들 눈에 영산강가 샛골마을 출신의 촌놈이야말로 딱이다 싶었을까. 아마도 스승들은 오래전 이미 그에게서 긴 세월 동안 오로지 한 길만을 가고자 하는 진득한 뚝심을 미리 엿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쪽과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지금에 와서야 ‘그것은 운명’이었던 걸 확신한다.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이미 저도 모르는 새 쪽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쪽물 들인 이불을 덮고, 어머니의 쪽치마 자락에 싸여 자랐으니까요. 중요무형문화재(제28호)로 지정된 ‘샛골나이’가 말해주듯 제 고향은 예로부터 이름난 무명 생산지였는데, 제 어머니가 베틀에서 베를 짜면 저는 그 옆에서 놀다 베틀 아래서 잠들곤 했습니다.”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는 그의 고향 들녘은 습지식물인 쪽을 재배하기에 최적지였다. 1960년대 초까지 영산강 일대 나주 사람들은 대부분 쪽농사를 삶의 일부로 삼았다.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은 무명베를 비단처럼 곱게 짜냈고, 직접 쪽농사로 거둬들인 쪽으로 무명베에 하늘의 빛을 담아냈다. 당시 쪽물 들인 샛골나이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에서 누구나 최고 품질의 상품으로 쳐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화학염료가 들어오면서 쪽은 빠른 속도로 설 자리를 잃어갔다. 쪽을 재배하던 땅은 갈아엎어지고 쪽씨마저 사라져 버렸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쪽에 익숙했던 그이기에 우리나라에서 쪽 염색이 한 순간 사라져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더욱 손에서 쪽을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그가 쪽을 재배하고 쪽물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우리의 쪽 염색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단, 그것만으로도 그는 흡족하다고 했다. 언젠가 전 세계인들에게 쪽물 들인 청바지를 입힐 거라는 그에겐 현재가 바로 그 ‘사건’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쪽에서 뽑아낸 파란 물이 짙은 남색으로 변한다는 데서 생긴 ‘청출어람(靑出於藍)’처럼, 초록색인 풀에서 온갖 쪽빛을 ‘깨워내는’ 과정인 쪽 염색이 후대에도 온전히 이어지는 것이다.
정관채 | 중요무형문화제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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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